
2024년, 대한민국 철도 업계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코레일과 다원시스 사이에 벌어진 수천억 원대 계약 파탄 사태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정부 기관이 사기당한 것 같다"라고 공개 질타한 이례적인 사건의 전말을 짚어봅니다.
최저가 낙찰제가 부른 다원시스 계약 파탄
다원시스는 전동차에 들어가는 추진 제어 장치, 인버터 같은 부품을 제조하던 코스닥 상장사였습니다. 2016년 전동차 제작 업체인 로윈을 인수하며 완성차 제조 분야로 사세를 확장했고, 당시 철도 업계에서 혁신적 도전자, 게임 체인저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확장 전략은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 없이 규모만 키운 무리한 도박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코레일과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레일은 노후 차량 교체라는 명분 아래 다원시스와 EMU-150, 즉 주요 철도 노선을 달리는 간선형 전동차 제작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18년 1차 계약에 이어 2019년 2차 계약까지 빠르게 이어졌고, 두 계약을 합산한 선급금만 4,130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 금액은 전액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왜 코레일이 이 모든 경고 신호에도 불구하고 9천억 원 규모의 국책 사업을 다원시스에 몰아줬느냐는 것입니다. 코레일의 답변은 충격적이리만큼 단순했습니다. 바로 최저가 낙찰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공공사업 발주에서 가장 낮은 금액을 써낸 업체에게 계약을 부여하는 이 방식은 대한민국 공공조달 시스템이 수십 년간 신봉해 온 원칙이었습니다. 기존 독점 체제를 깨고 예산을 절감한다는 명분은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로템이 오랫동안 독점해 온 철도 완성차 시장의 기술 진입 장벽은 이유 없이 높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동체를 안전하게 선로에 올리는 완성차 제조는 특정 부품을 깎고 조립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다원시스의 유일한 무기는 비상식적인 저가 공세였고, 코레일은 최저가라는 가격 신기루에 사로잡혀 품질, 안전, 신뢰를 담보로 잡히는 결과를 자초했습니다.
1차 계약 150량은 2022년 연말까지 납품이 완료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선로에 투입된 기차는 고작 30량, 목표치의 20%에 불과했습니다. 2차 계약 208량도 2023년 하반기 납품 기한에 나타난 것은 20량뿐이었습니다. 납품률 10%. 이 숫자 하나가 최저가 낙찰제의 구조적 실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급금 유용과 폰지 구조의 실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 중 하나는 다원시스의 선급금 유용 문제입니다. 선급금이란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발주처가 미리 지급하는 자금입니다. 취지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법적으로 반드시 해당 계약의 이행 목적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확히 붙어 있습니다. A 계약으로 받은 선급금은 A 계약의 자재 구매와 생산에만 써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국토부 감사 결과, 다원시스는 이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음이 밝혀졌습니다. 2차 계약 선급금 2,457억 원 가운데 무려 159억 원이 1차 계약분 차량 제작에 전용되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 돈을 빼내어 왼쪽 주머니 구멍을 막은 셈입니다. 이 구조는 폰지 사기와 구조적으로 판박이입니다. 새로운 계약에서 받은 선급금으로 이전 계약의 미이행분을 메꾸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가 반복된 것입니다.
국토부가 현장 조사를 위해 다원시스의 정읍 공장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더욱 참담했습니다. 완성차 제작에 필요한 주요 자재와 부품이 겨우 12량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40량 이상을 제작해야 하는 공장에 최대 12량 치 자재만 존재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세금 수천억 원이 실제 차량 제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봄에는 수백 량의 미납 상태가 지속되는 아수라장 속에서 3차 계약이 116량 추가로 체결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3차 계약 물량이 사전 설계조차 완료되지 않은 백지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전동차의 뼈대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한 상태에서 수천억 원대 계약서가 오간 것입니다. 총 세 차례 계약 물량 474량, 계약 규모 약 9,149억 원. 코레일은 이 전체 계약 규모의 60% 이상을 선급금으로 이미 집행했습니다.
납기 지연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기술 결함도 드러났습니다. 2024년 10월 22일 시흥 차량 기지에서 안산역으로 이동하던 다원시스의 서해선 열차 연결기가 갑자기 파손되면서 객차 분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에어컨 고장이나 안내 방송 오류 수준이 아닌, 운행 중 객차가 분리되는 자칫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해선의 운행 횟수가 줄고 배차 간격이 늘어나면서 수도권 서부 주민들의 일상적인 출퇴근에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이어졌습니다.
공공 발주 혁신 없이는 제2의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이번 다원시스 사태를 단순히 한 기업의 도덕적 해이나 경영 실패로만 귀결시켜선 안 됩니다. 사태의 구조적 배경에는 대한민국 공공 발주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 결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관 예우 문제입니다. 코레일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퇴직자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언급 자체가 코레일 퇴직자들이 다원시스를 비롯한 관련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 김은혜 의원이 코레일 출신 인사 8명이 다원시스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다원시스의 주주 피해 문제도 짚어야 합니다. 다원시스는 2021년 이후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주주배정 유상 증자를 단행했습니다. 열차 제작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분이었지만, 정작 대표이사 친인척들은 오히려 지분을 매도했습니다. 또한 반도체 사업 부문을 분리해 설립한 자회사 다원 파워트론의 지분율이 최근 절반 이하로 떨어진 사실을 두고, 유상 증자를 통해 대주주 관련 법인에 지분을 넘기면서 모회사 주주들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이른바 터널링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돈이 없다며 납품을 미루고 주주에게 손을 벌린 회사가 신사옥 건립에 500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는 의혹도 시장의 공분을 샀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핵심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공공 발주에서 가격이 유일한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최저가 낙찰제는 표면적으로 예산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품질 저하와 납기 파탄, 안전사고, 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듭니다. 공공 발주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가격 중심에서 기술력과 도덕성 검증 중심으로 전면 혁신하지 않는 한, 제2의 다원시스 사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습니다.
현재 다원시스는 법원의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고, 주식 매매는 전면 중단된 상태입니다. 회생 계획안 승인, 채무 조정 성공, 감사 의견 거절 사유 해소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관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주주들에게는 지금 무엇보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며, 향후 회생 절차 진행 상황과 거래소 실질 심사 결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이번 다원시스 사태는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안전과 신뢰를 희생하면 결국 몇 배의 사회적 비용과 시민의 생명 위협으로 되돌아온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공공 발주의 패러다임을 가격이 아닌 기술력과 도덕성 검증 중심으로 바꾸지 않는 한, 철도 업계의 이 흑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채널명: 경제한방 / https://www.youtube.com/watch?v=3MOg-k6Xj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