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기준 베트남은 약 8%의 고성장을 이어가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습니다. 수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한계를 직시해야 할 시점입니다.
미·중 갈등이 만들어 낸 지정학적 행운, 그리고 그 한계
베트남의 고성장은 자국의 기술력이나 산업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두 가지, 외국인 직접 투자(FDI)와 저렴한 인건비였습니다. 1986년 도이머 이 정책을 통해 사유 재산과 민간 기업을 허용하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사실상 받아들인 베트남은, 이후 외국 자본 유치에 성공하며 고속 성장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삼성은 2008년 박닌성에 첫 휴대폰 공장을 세운 이후 약 230억 달러를 베트남에 투자했으며, 2024년 기준 베트남 전체 GDP의 13.2%, 국가 총수출액의 13.4%를 삼성 단일 기업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나이키 역시 신발의 50%, 의류의 약 3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베트남의 성장 동력이 한 차례 더 불붙은 계기는 미·중 무역 전쟁이었습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정치적 불안정이 겹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포스트 차이나, 즉 새로운 생산 기지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정치적 안정성과 성실한 노동력, 어느 정도 갖춰진 인프라, 유리한 인구 구조를 두루 충족하는 베트남이 그 수혜를 온전히 받아 냈습니다. FTA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 경로까지 확보한 덕분에 성장률이 꺾일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더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정확히 지적하듯, 이 호황은 베트남 자체의 실력이라기보다 '지정학적 행운'에 가깝습니다. 미·중 갈등이라는 외부 변수가 만들어 낸 반사이익이 베트남 경제의 펀더멘털 체력인 양 포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베트남 전자제품 수출의 98%는 외국인 투자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트남 기업이 자체 기술로 만들어 수출하는 전자 제품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현지 베트남 기업의 대부분은 포장이나 청소, 경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2차·3차 협력 업체에 불과하며, 핵심 부품이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자국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지금의 고성장은 베트남이 성장의 착시 효과에 취해 구조적 전환을 미룰 여유가 없음을 반증하는 역설적인 신호이기도 합니다.
기술이전의 사다리가 끊어진 시대, 베트남의 민낯
세계은행이 제시한 개발 도상국의 고소득국 성장 전략, 이른바 'C리 전략'은 세 단계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인베스트먼트(투자)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고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해 고도성장을 이끌어 내는 단계입니다. 둘째는 투자에 인퓨전(주입)을 더하는 단계로, 다국적 기업의 선진 기술과 비즈니스 방식을 자국 경제 전반에 체화시키며 자국 기업이 탄생하는 시기입니다. 셋째는 이 두 가지 위에 이노베이션(혁신)을 얹는 단계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원천 기술을 확보해야 비로소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베트남이 인건비 수준과 소득 지표로는 두 번째 단계에 와 있어야 함에도,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외국인 직접 투자가 생산 기지 국가의 기술력까지 끌어올려 주는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을 거래하거나 이전해 주는 사례가 있었고, 현지 기업이 이를 흡수해 자체 역량을 키우는 경로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다리는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기지 국가에 절대로 핵심 기술을 이전하지 않습니다. 기술이전의 시대는 끝난 것입니다.
베트남 최대 민간 기업인 빈 그룹은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수출보다 내수에 집중하는 동남아 기업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며, 자동차 사업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스마트폰 사업은 이미 철수했습니다. 기술 개발로 중진국 함정 돌파를 이끌 기업으로 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건너뛰기식 기술 자체 개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기술은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으로 발전해 버렸고, 설령 따라잡는다 해도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해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의 GDP 대비 R&D 지출은 0.44%로, 한국(5%), 대만(4%)은 물론 태국(1.2%), 말레이시아(1%)보다도 낮습니다. 토 람 서기장이 향후 5년간 R&D 지출을 2%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첨단 기술의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아진 현시점에서 이 선언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스마트 팩토리 시대, 인간 노동력의 가치를 잃어 가는 베트남
베트남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인간 노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예리하게 짚어 낸 것처럼, 스마트 팩토리와 로봇 기술의 발전은 그 마지막 무기마저 빠르게 퇴색시키고 있습니다. 저렴한 인건비라는 메리트는 자동화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시대적으로 더 이상 결정적인 경쟁 우위가 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건비가 낮더라도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더 저렴하고 정밀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면, 기업이 굳이 인건비가 싼 국가를 선택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든 국가가 자국 내 기업 공장을 되돌려 오는 리쇼어링 정책을 강화하면서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같은 동남아권에서도 베트남보다 인건비가 낮은 국가들이 세제 혜택까지 내세우며 투자를 유치하려 경쟁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베트남 내부에서는 중진국 함정을 돌파할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대학 진학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인구 2만 명 중 개발 인력이 10명 미만이며, 이마저도 80% 이상이 공공 부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역량 있는 인재들은 더 나은 환경과 대우를 찾아 미국 등 선진국으로 떠나버리는 두뇌 유출 현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중진국 함정의 본질적인 위험은, 한번 돌파에 실패하면 재도전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인건비는 저소득 국가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고,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양극화·저출산·고령화까지 복합적으로 엄습합니다. 중국조차 중진국 함정 돌파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자체 기술 기업 하나 제대로 일궈내지 못한 베트남의 현실은 더욱 가혹합니다. 10년 전부터 하위 국가들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경고가 나왔고, 이제는 기적조차 먹히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재 베트남의 고성장은 도이머이 이후 쌓아온 노력의 결실이지만, 그 이면은 외국인 직접 투자와 지정학적 행운에 기댄 구조적 취약성입니다. 독자적인 원천 기술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자국 기업을 단 하나도 스스로 일궈내지 못한다면, 베트남은 선진국의 거대한 조립 공장 역할을 하다 중진국 함정의 교과서적 표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의 착시 효과가 걷히기 전, 구조적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영상: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 인건비는 오르고 기술은 부족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진 베트남
https://www.youtube.com/watch?v=TqGWAlTUk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