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채가 당근마켓에서 석 달째 팔리지 않고, 베란다에는 먼지 쌓인 텐트가 방치되어 있습니다. 골프, 캠핑, 스키, 자전거, 낚시라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주말을 채우던 다섯 가지 취미가 지금 동시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라, 중산층 해체라는 구조적 위기의 경고 신호입니다.
코로나 거품이 만든 과잉 소비와 그 붕괴
2022년 전국 골프장 이용객이 5천만 명을 넘기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시기 캠핑 시장은 6조 9천억 원 규모로 부풀어 올랐고, 텐트 하나에 100만 원, 타프에 30만 원, 화로대에 코펠 랜턴까지 세팅하는 데 수백만 원이 들어도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었습니다. 스키장 방문객도 전성기인 2011년 시즌에 686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대한민국 레저 산업은 전성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호황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해외여행이라는 고속도로가 코로나19로 막혀 버리자, 사람들은 캠핑과 골프장이라는 국도로 몰려들었습니다. 진짜 좋아서 간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 몰려간 대체 소비였습니다.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순간 사람들은 원래 가고 싶었던 곳으로 돌아갔고, 남은 것은 과잉 공급된 캠핑장 3,695개와 창고에 쌓인 재고뿐이었습니다.
붕괴의 속도는 가혹했습니다. 2024년 캠핑 소비는 전년 대비 11.8% 줄었고, 한 사람이 캠핑 용품에 쓰는 돈도 2022년에 비해 30% 가까이 빠졌습니다. 캠핑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스노우피크는 2023년 순이익이 99.9% 감소했고, 결국 2024년 4월 상장 폐지를 선택했습니다. 국내 브랜드 헬리녹스는 매출이 786억 원에서 424억 원으로 반토막 났고, 코베아도 2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골프장 이용객은 4,700만 명대로 떨어지며 2년 연속 감소했고, 골프용품 수입액도 23% 줄었습니다. 법인 카드라는 산소 호흡기가 끊기자 골프 산업의 민낯이 드러난 것입니다. 회원제 골프장 111곳이 대중 골프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회원권이 47,000개에 달합니다. 비싸게 끊어 놓은 회원권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 분들이 그만큼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 거품이 만들어 낸 이 수요는 처음부터 진짜 수요가 아니었습니다. 댐이 막혀서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뿐이었고, 댐이 열리자 물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과잉 투자의 흔적만이 폐허처럼 남아 있습니다.
중산층 해체가 드러낸 소비의 민낯
코로나 거품이 꺼진 것만으로는 다섯 가지 취미의 동시 몰락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중산층의 지갑이 닫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소득 기준 중산층 가구의 월 여윳돈은 현재 65만 8천 원으로, 5년 만에 가장 적은 금액입니다. 세금, 보험료, 대출 이자 같은 비소비 지출이 한 달에 77만 7천 원까지 올라 전년 대비 12.8% 증가한 반면, 중산층 소득 증가율은 고작 1.8%에 머물렀습니다. 벌어들이는 돈은 거의 늘지 않는데 빠져나가는 돈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가처분 소득의 약 90% 수준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직장인이 월 700만 원을 벌어도 손에 남는 돈이 수십만 원에 불과한 현실이 됐습니다.
베이비붐 세대 약 716만 명이 순차적으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점도 핵심적인 변수입니다. 골프를 가장 열심히 치던 이 세대의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월 67만 원입니다. 한 달에 67만 원으로는 라운딩 한 번조차 가기 어렵습니다. 법인 카드라는 산소 호흡기가 사라지자 골프는 로망에서 짐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전문가이 정확히 짚어낸 통찰이 빛을 발합니다. "취미를 포기한 게 아니라 취미를 유지할 여력 자체가 사라졌다"는 진단은 현재 40대 직장인들이 마주한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 현상이 일본의 전철을 압축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 일본은 1억 국민 모두가 중산층이라 불리던 나라였습니다. 세계 명품의 70%를 일본인들이 사갔지만, 버블이 터진 뒤 레저 산업을 포함한 소비 전반이 통째로 얼어붙었습니다. 일본이 30년에 걸쳐 겪은 과정을 우리는 불과 3년에서 4년 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소득 상위층은 소비를 더 늘리고 하위층은 더 줄이는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한가운데 있던 중산층이 소리 없이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득 기준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이 60%인데 그중 절반이 자기 자신을 하위층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통계는, 중산층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지만 중산층 생활은 이미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100만 원짜리 골프채와 베란다에 쌓인 먼지 덮인 텐트는 바로 그 해체의 물증입니다.
러닝 열풍이 말해 주는 것, 그리고 남은 질문
사라진 수요는 어디로 갔을까요? 러닝입니다. 2025년 기준 러닝 인구가 천만 명을 돌파했고, 전국에서 마라톤 대회가 254회 열렸으며 참가 인원이 100만 명을 넘겼습니다. 러닝 관련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70%나 성장했습니다. 자전거 업계가 2천만 원대 프리미엄 전략에 올인하다 국내 업체 알톤 스포츠가 매출 29% 감소와 42억 원 손실을 기록하는 동안, 운동화 한 켤레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취미가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했습니다. 등산도 여전히 건재하고 수영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별한 장비도, 예약도, 비싼 멤버십도 필요 없는 취미들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지적을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러닝으로의 이동을 '허세 없는 순수한 취미로의 복귀'로만 해석하는 것은 다소 낭만적인 시선일 수 있습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러닝 크루 내에서의 소외감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고,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카본화 유행 등 과시 문화는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골프장 인증샷이 러닝 크루 단체 사진과 한정판 운동화 인증샷으로 대체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시각입니다.
스키 산업의 위기는 이와 또 다른 차원의 경고를 던집니다. 국립기상과학원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한국의 겨울은 18일 짧아졌습니다.
한 시즌 영업일이 120일에서100일로 줄었고, 부족한 자연설을 인공눈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산업용 전기 요금은 최근 3년 사이 75.8% 올랐습니다. KW시당 105원이던 것이 185원이 됐습니다. 그 결과 2024 시즌 전국 스키장 방문객은 443만 명으로 전성기 대비 35% 줄었고, 17곳이었던 스키장이 13곳으로 감소했습니다. 포천 베어스타운은 2022년 11월 운영을 멈춘 뒤 2년 반 넘게 방치된 채 리프트는 멈추고 슬로프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전국 스키장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기후 변화는 개인도 기업도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낚시 역시 전체 인구 720만 명 중 20대 비중이 5.7%에 불과하고 40대 이상이 70%를 차지하는 고령화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던 문화적 전승이 끊기고 있으며, 동물권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도 낚시 인구 유입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취미는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다섯 가지 취미의 동시 몰락은 단순한 유행의 교체가 아닙니다. 코로나 거품의 붕괴, 중산층 지갑의 봉쇄, 그리고 기후 변화라는 세 가지 구조적 힘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러닝 열풍을 순수한 취미 복귀로만 해석하는 것은 낭만적 오독일 수 있습니다. 과시 문화는 여전히 형태를 바꾸어 지속됩니다. 그럼에도 이 변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돈과 장비와 인증샷이 아닌, 진짜 내 취미는 무엇이었냐고 말입니다.